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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16:1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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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충 정신 --- 모두 살리고 본인은 희생 |
24년전 하나호 유정충 선장의 정신만 지켰어도…
선원 모두 탈출시키고 배와 함께 바다속으로…세월호 침몰로 새롭게 조명
기사입력 2014.04.29 17:32:42 | 최종수정 2014.04.29 19:16:55
유승열 씨가 속초에 있는 아버지 고 유정충 선장 기념비 앞에서 목숨을 바쳐 선원 전원을 구해낸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1990년 3월 1일 대학 입학식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안고 부산으로 가던 19세 유승열 씨는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본가가 있는 속초로 발걸음을 돌렸다. 자신도 꿈에 그리던 한국해양대에 외아들이 당당하게 합격하자 뿌듯한 마음으로 배를 탔던 아버지의 사고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날 오후 1시, 제주도 서남방 370마일 해역을 지나던 100t급 복어잡이 어선 하나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유씨의 아버지 유정충 선장이 몰던 `602 하나호`가 동중국해로 고기잡이를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갑자기 몰아치는 돌풍 속에서 순식간에 4m 높이의 파도에 잠긴 것이다.
"602 하나호 침몰 중…." 선원들을 구명 보트에 태워 대피시킨 유 선장은 반쯤 물에 잠긴 조타실에 혼자 남아 필사적으로 무전기를 잡고 외쳤다. 선장의 조난 신고를 받고 몰려온 인근 어선과 구조단은 12시간을 넘게 바다에 떠밀려 다니던 스물한 명의 선원을 모두 구조했다. 하지만 유 선장은 폭풍우에 휩쓸린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끝내 찾지 못한 그의 장례식은 시신 없이 사상 처음으로 `전국 어민장`으로 치러졌다.
지난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맹골수도 해역을 지나던 6800t급 여객선 세월호가 180도로 뒤집혔다. 배가 기울자 제대로 된 대피 명령도 하지 않고 도망친 이준석 선장이 버린 것은 배만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구출된 174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300여 명이 바다를 헤어나오지 못한 채 죽거나 실종됐다. 하나호의 68배에 이르는 거대 어선 세월호 `캡틴`의 책임의식은 참기 어려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수백 명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자신만 빠져나온 세월호 선장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20여 명의 선원을 모두 구해낸 유 선장의 아들 승열 씨(43ㆍ현대글로비스 근무)는 진정한 시맨십(seamanship)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버지가 세월호의 선장이셨다면 가장 먼저 바다에 잠기더라도 승객과 배를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어쩌다 구출됐더라도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시 배로 보내달라고 했을 겁니다"라며 그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뿐이지만 망망대해에서 모두의 생사를 가장 먼저 책임지는 사람은 선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상 선장이 맨 나중에 나와야 한다. 못 나와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책임을 질 가족은 너와 네 어머니뿐 아니라 선원과 그 가족을 합쳐 80명이란다." 유 선장이 해난사고 뉴스를 신문에서 볼 때마다 아들에게 한 말이다. 20대부터 생계를 위해 배를 탔던 그는 속초시 수협이나 시로부터 모범 어업인으로 상을 받으면 항상 부상으로 따라오는 금일봉을 모두 선원들에게 주었다.
1년에 10개월 이상을 위험한 바다에서 사는 남편을 보고 아들이 배 타는 것을 반대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항해사의 꿈은 접었지만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고 유 선장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선장의 책임의식을 존경했다.
평소에 무뚝뚝하고 말수는 적었지만 고 유 선장은 늘 아들 유씨에게 `정직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가 난 이후로 더욱 자주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그는 "세월호 선장이 정직하게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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