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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0 01:3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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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기하지 마라, 위기를 기회로... |
분식집 주인에서 구청장 되기까지! 박춘희 송파구청장
레이디경향 | 입력 2013.03.12 17:29
위기를 기회로 바꾼'지(知)호(好)락(樂) 인생법'
30대 초반의 그녀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분식집 아줌마였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도전했고 마흔아홉 살에 합격했다. 여성 최고령 합격자라는 타이틀도 함께였다. 2010년 송파구청장에 당선되며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은 후 여전히 인생의 전성기를 살아가고 있다.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인생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박춘희(59) 송파구청장.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Lesson 1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내 인생을 맞추려 하지 마세요
여자 나이 서른일곱이면 한창 아이들을 양육하기에 바쁜 시기일 것이다. 가정일과 직장 일에 쫓겨 어린 시절 품어온 꿈은 어느덧 잊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꿈보다 현실이 가까운 이때 그녀는 사법시험 도전이라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게 된다. 이야기는 그녀가 부산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가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어요. 반드시 잘 키우리라는 각오로 무작정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로 이사를 와 대학가 인근에서 조그만 분식집을 시작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앞치마를 두르고 식당 일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경남 산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산대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작은 시골마을 5남매 중 셋째.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항상 아이들을 몰고 다닐 정도로 활달했고 웅변대회를 비롯한 백일장, 미술, 음악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 아님을 알아본 마을 어른들은 당시 유명 정치인이었던 박순천 여사를 떠올리며 "춘희야, 너는 제2의 박순천이 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해주셨다.
아마 그때일 것이다. 그녀 마음속 깊은 곳에 정치인과 법조인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은 것이 말이다. 그랬던 박춘희가 꿈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된 것을 보고 가장 놀란 이들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었다.
"친구 하나는 제가 주방 일에 서빙, 배달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춘희 네가 왜 이렇게 됐노' 하더라고요. 아버지도 그 꼴 보기 싫다며 눈물을 흘리셨고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저 역시 잠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바빴어요. 손님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거든요.
'작은 분식집이면 어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나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으면 됐다'라는 생각으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어요. 그때 알았죠. 나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Lesson 2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결코 포기하지 마라
그러던 중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아이들을 아버지에게 보내게 된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아이들의 교육과 행복을 위해 보내는 것이 낫다는 가슴 아픈 결론이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한순간에 생기를 잃고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돈을 버는 의미가 사라지더라고요. 공허하고 허무한 마음에 3일을 꼬박 누워만 있었어요. 제 일생 동안 그렇게 오랜 시간 아무것도 안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죠. 다시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기도하다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 꿈이 떠오르더군요.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그 길로 짐을 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싶어요. 목표와 꿈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심장이 다시 뛰는 기분이었어요."
그때부터 그녀의 10전 11기 사법시험 도전기가 시작된다. 신림동 산꼭대기,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 작은 방에 거처를 정하고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에 매달렸다. 아무리 학창 시절 공부로 이름을 날렸던 그녀라지만 손에서 책을 놓은 지 십수 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결과는 낙방의 연속이었다.
"세 번째 떨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네 번째 떨어지니 두려워지더라고요. '아, 이게 내 길이 아닌가. 이러다 영원히 합격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과 회의가 밀려왔죠.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아마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기분에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를 외쳤죠(웃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었어요."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연이은 쓰라린 실패를 겪을 때마다 고시원 방에 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서른일곱 여름 신림동에 들어가 마흔아홉, 최종 합격 소식을 듣기까지 10년 넘는 긴 여정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집념이었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결코 포기하지 마라'라는 처칠의 유명한 연설이 있죠. 10년 이상 공부를 하며 저 역시 정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최고령으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됐어요.
만약 시험에 실패했더라도 그때의 힘들었던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지 제 인생에 도움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꼭 공부뿐 아니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반드시 돌아옵니다. 60년 가까이 산 인생 경험으로, 그동안 숱한 고비와 좌절을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약속드릴 수 있어요."
Lesson 3 믿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법조인의 꿈을 이룬 그녀는 또 한 번의 도전을 하게 된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문득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 세월 혼자 고군분투하며 인생의 고비를 넘어오다 보니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거죠. 제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요. 내가 가진 에너지와 역량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송파구청장 선거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그야말로 돈도, 조직도, 사무실도 없이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돈으로도 사지 못할 값진 인생 경험이 있었다. '모든 일은 사람이 중심이다'라는 철학 아래 두 아이를 키우며 분식점을 운영했던 경험과 여성 법조인 특유의 세심함을 더해 다양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실용성과 창의성이 조화를 이룬 저출산 고령화 사업, 방송과 교육청, 대학교 등 다양한 기관들과 연계한 '책 읽는 송파'는 특히 눈에 띄는 사업이다.
"관내 버스정류장이나 공중전화 부스를 이용해 책장을 만들었어요. 자꾸 책이 분실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구민들이 책을 읽기 위해 가져가는 것이니 한편으론 좋아요. 택시를 타면 EBS 라디오를 통해 책을 읽어주는 '책 읽는 택시'도 인기가 많고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것도 복이죠. 감사하고 있어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의 '지(知)호(好)락(樂)'은 변화무쌍한 삶을 지탱해준 박춘희 송파구청장의 인생 모토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무엇이든 불신에서 시작한다면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습니다. 본인에 대한 것이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든, 신뢰를 주고받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긍정할 수 있었던 저의 인생 노하우이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헤어 & 메이크업 / 에스휴(02-3448-3007) ■장소협찬 / 라빌드팡(02-517-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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